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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선덕여왕
선덕여왕?
선덕여왕은 신라 27대 왕이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다. 그녀는 여자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내 정치세력의 저항과 주변국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김유신과 김춘주의 지지를 받아 위기를 극복하고 불교의 힘으로 사상의 권위를 세웠다.

선덕여왕 출신
선덕여왕은 역사서에 선덕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그의 이름은 덕만 또는 만입니다. 선덕은 죽은 후에 추증한 시호이다. 그녀는 26대 진평왕의 장녀이며 어머니는 복승 갈문왕의 딸인 마야부인 김씨이다. 동생이자 천명공주로서 그녀는 태종무열왕을 낳았습니다. 서동설화에서 선화 공주는 진평왕의 셋째 딸이자 선덕 여왕의 여동생입니다. 선덕여왕의 남편에 대해 산국유사는 음갈문왕을 아내로 삼았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에서는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고 한다.

632년 진평왕이 죽고 선덕왕후가 즉위하였다.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왕위에 오른 이유는? 삼국지에서는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덕만을 왕으로 삼고 그를 성고황고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 중고기의 왕위는 반드시 왕의 아들에게 계승되는 것은 아니어서 여왕 탄생의 이유가 부족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삼국유사는 성골은 남자가 다하여 여왕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다른 이유를 전한다. 당시 진평왕의 가계를 보면 진평왕의 동생인 백반과 국반이 죽고 국반(진덕여왕)의 딸 승만만 남았다. 정평왕의 혈통에는 성골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없었으며, 차선책으로 여성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성골의 지위는 선덕여왕이 즉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것은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631년, 진평왕이 죽기 직전 이찬 칠숙과 아찬석품이 반란을 일으켜 진압되었다. 이 반란은 선덕여왕을 후계자로 내세운 것에 대한 항의로 보인다. 이에 선덕여왕은 성고황조라는 칭호를 통해 성골의 위상을 강조하고 신성을 과시하여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632년 선덕여왕이 즉위하여 16년부터 647년까지 신라를 다스렸다. 선덕왕후는 생전에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낭산 남쪽 도리천 한가운데에 묻으라고 명했다. 선덕왕후가 예언한 날짜에 죽자 신하를 낭산 아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장례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후에 문무왕은 선덕여왕의 능 아래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교에서는 도리천이 사천왕천 위에 있다고 하여 선덕여왕의 예언이 맞다. 현재 선덕여왕릉은 경주 배반동에 있다. 선덕여왕이 죽은 후 사촌이 즉위하여 진덕여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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